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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역사와 문화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

by 북촌토박이 2024. 1. 31.

여운형 선생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여운형 선생

 

여운형 선생 걸어오신길

 

출처: 나무위키

여운형 선생은 1886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외무부 차장,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또한, 신한청년당, 조선중앙일보, 중앙방송국 등 다양한 단체와 기관을 설립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뛰어난 웅변가이자 통일운동가로도 유명합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남북협상에 나서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1947년 7월 암살을 당하면서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의 업적과 정신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 주요 업적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1926년 국무총리 역임
1919년 신한청년당 창립
1920년 조선중앙일보 창립
1927년 중앙방송국 창립
1945년 광복 이후 남북협상 주도

 

여운형 선생 통일운동

여운형 선생은 일제강점기부터 통일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존엄과 번영은 통일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정부 수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여운형 선생은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김구 선생과 함께 1945년 12월 1일 남북협상 대표로 선출되어 모스크바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이념적 대립으로 남북협상은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남북협상이 결렬된 후에도 통일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1946년 6월 23일 남북협상 실현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1947년 4월에는 남북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결국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여운형 선생과 북촌

여운형 선생님께서 1933년에서 1947년까지 살아오신 집터